** 월악산 산행기 **
언제부턴가 나에게 산은
멀리 두고 그리워하는 사랑하는 님으로,
얼토당토않은 응석을 부려도 다 받아주는 아버지의 품으로,
제 설움에 꺼이꺼이 울제 그 슬픔을 품어 주는 친구가 되었다.
또 집나간 자식이 언제든지 발길을 돌려
아무런 망설임 없이 들어갈 수 있도록 열려있는 안식처이기도 하다.
황사로 뿌옇던 하늘이 며칠 전 쏟아졌던 비로 갈끔해져 있었다.
'살랑거리는 바람이 불어주는 6월의 첫 날을 어영부영 보낼쏘냐, 그래 산에 가자'
이리 맘 먹고 나니 소풍날 받아놓은 아이같이 설레기까지 한다.
내일 만날 월악산과 난 어떤식으로 조우하게 될까? 기대와 염려 속에 새벽을 맞았다.
서둘러 준비하고 8시에 만나기로한 사당역으로 나갔다.
거의 한 달만에 만난 우리 어깨동무 산악회원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화창하고 봄의 생기 발랄함이 채 가시지 않은 산야는
앳된 소녀티를 벗은 당돌한 열여섯 청춘이다.
서걱거리는 모래알 같은 일상의 자잘함을 털고 포부도 당당하게 저벅저벅,
산속으로 빨려가듯 산행이 시작됐다.
월악산 국립공원이라는 이름이 헛되이 난게 아닌 모양이다.
우뚝한 솟을대문으로 위엄은 있으나
활짝 열어젖힌 어느 명문 대가의 기품이 서린듯하다.
물오른 버들개지처럼 제법 땅은 촉촉하고
짙푸른 녹색으로 하늘을 가린 숲은 나를 온전히 맡겨도 좋을만 했다.
이 자리에서 고백하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담백한 말이 있다.
"당신 참 좋다"이다.
다른 어떤 말보다 많은 뜻을 지닌 꾸밈없는 말이다.
산을 오르면서
내내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고 '당신 참 좋다'라는 문구를 되뇌이며 올랐었다.
덕주사 너머 덕주사지 마애석불을 보면서
부처님의 큰 뜻보다는 부처의 부조상을 새긴
옛사람들의 노고가 더 크게 느껴졌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다보니 이 큰 산에 우리 일행만 남은 듯 조용하다.
앞가슴으로 또르르 흐르는 땀방울을
목젖을 타고 넘어가는 찌리리한 소주맛과 견줘도 될까?
포만감을 느끼며 공연히 깔깔대며 웃고 싶어진다.
천국의 계단을 오르듯 가뿐한 발걸음으로 영봉을 향할제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오직 청량한 바 람만 불어 줄 뿐이다.
이 큰 산이 낮게 엎드려 신을 경배하는 듯 엄숙하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불교 초기경전에 나오는 글귀가 생각난다.
오른편으론 병풍처럼 둘러쳐진 월악산 자락이 보이고
왼쪽으론 쪽빛 충주호수가 보인다.
눈 감으면 파도소리인양 바람이 불어온다.
물푸레나무, 당단풍나무, 느티나무, 높이 오를수록 우뚝한 소나무까지
저 멀리 아득한 곳에서 실어오는 충주호수의 은근한 눈빛을 즐기는 듯하다.
눈에 담고 마음에 담고 싶어서 몇 컷 찍고 어물쩍거리면
날다람쥐 같은 우리네 회원님들 벌써 위쪽으로 멀어진다.
허둥지둥 쫓아가기 바쁘다.
(그래도 노고단님이 계셔서 꼴찌는 면했는데.....)
드디어 960미터 고지에 올라 점심 보따리를 풀 어 낸다.
산에서 먹는 음식앞에서 까다롭게 구는 이는 없습니다.
땀 흘린 뒤에 먹는 조촐한 음식이 고마울 따름이죠.
막걸리 맛이 꿀맛이죠? 못하는 저도 한잔 했습니다.
가슴이 벌떡거리네요.
달이 뜨면 걸린다는 영봉으로 향합니다.
거칠 것 없는 영봉(1097)에 올라 내려다 보며 큰 숨을 쉬고 나니
소중한 것조차 적당히 떼어 놓고 바라봐야 한다는 가르침을 얻은 것도 같습니다.
더 움켜쥐려고 안달하지 말고 지금 얻은 것에 만족하며
나이들수록 담백한 밥상과 측은지심을 키워가야 합니다.
過猶不及이라 했던가!
시원한 바람에 번뇌도 날리고
영봉에 올라 마음의 수양도 제법 한 듯한데
내려오는 길은 정말이지 만만치 않습니다.
산을 오를 때 느낌이 달착지근한 쌀밥이라면
내려올 땐 뜸들이지 않은 보리밥 같습니다.
많이 웃어야 행복합니다.
웃을 일이 없을 때는 일부러라도 웃어야 합니다.
웃음은 나 뿐만 아니라 제 옆에 있는 이의 마음조차 밝고 가볍게 합니다.
우리 회원님들 목젖이 떨리도록 많이 웃고 행복해집시다.
2008. 6. 1.
** 글쓴이 / 장연옥 님 **
